명리를 말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아직 명리에 대한 마음을 다 잊지 못해서이니라.
높은 벼슬아치들의 행렬 가운데 명아주 지팡이를 짚은
산인 한 사람 섞여 있으면 문득 한결 높은 풍도가 더해진다.
허나 고기잡이와 나무꾼이 다니는 길 위에 관복 입은 벼슬아치가
한 사람 섞여 있으면 도리어 수많은 속된 기운을 더할 뿐이다.
이에 진실로 짙은 것은 옅은 것만 못하고 속된 것은 우아한 것만 못함을 알겠구나.
낚시는 즐거운 일이지만 오히려 생살의 권세를 쥐고 있고,
바둑과 장기는 맑은 놀이지만 또한 전쟁의 마음이 움직이고 있다.
이로써 살펴보면, 일을 즐거워하는 것은 일을 덜어 자적함만 같지 못하고,
재능이 많은 것은 재주가 없어 진심을 보전함만 같지 못함을 알 수 있도다.
꾀꼬리 노래하고 꽃은 만발해 산이 무르녹고 계곡이 아름다워도
이 모두 천지의 거짓된 모습일 뿐이다.
물이 마르고 잎이 떨어져 바위가 앙상하고 언덕이 메말라야
비로소 천지의 참모습을 볼 수 있느니라.
세월은 본래 길건만 바쁜 자가 스스로 짧다 하고,
천지는 본래 넓건만 천박한 자가 스스로 좁다 하며,
바람과 꽃 눈과 달은 본래 한가롭건만 악착스런자가 스스로 번잡하다 하는도다.
좋은 풍경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니
쑥대로 얽은 창문과 대나무로 엮은 집 아래에도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이 스스로 한가롭다
사람들은 글자 있는 책은 읽을 줄 알지만 글자 없는 책은 읽을 줄 모르며,
줄이 있는 거문고는 탈 줄 알지만 줄이 없는 거문고는 탈 줄 모르니,
형체만 사용하고 그 정신을 사용하지 못한다면 어찌 금서의 참 맛을 깨달을 수 있겠는가.
손님과 벗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마음껏 술 마시고 흐드러지게 노는 일은 즐거우나,
이윽고 시간이 다해 촛불이 가물거리고 향불도 꺼지고 차도 식고 나면,
저도 모르게 도리어 흐느낌을 자아내어 사람을 한없이 쓸쓸하게 한다.
세상 모든 일이 이와 같은데 사람들은 어찌하여 일찍 머리를 돌리려 하지 않는가.
권력을 따라가고 세력에 붙는 재앙은 매우 참혹하고도 몹시 빠르되,
고요함에 살고 편안함을 지키는 맛은 지극히 밝고도 또한 가장 오래 가느니라.
색욕이 불길처럼 타오르다가도 일단 생각이 병든 때에 미치면 문득 흥취가
싸늘한 재 같아지고, 명리가 옛 처럼 달콤하다가도 일단 생각이 죽는 곳에
이르면 문득 밀랍 같아지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언제나 죽음을 근심하고
범을 염려하면, 가히 헛된 일을 없애고 도심(도심)을 기를 수 있느니라.
앞을 다투는 길은 좁으니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면 저절로 한 걸음 넉넉해지고,
무르녹고 아름다운 재미는 짧으니 일 분만 맑고 엷게 하면 저절로 일분이 유장해지리라.
더위를 없앨 수는 없으되 더위를 괴로워하는 이 마음을 없앤다면
몸은 언제나 서늘한 누대 위에 있게 되고,
가난을 쫓아 버릴 수는 없으되
가난함을 걱정하는 이 마음을 쫓아 버리면
마음은 언제나 안락한 집 가운데에 있게 되리라.
속세를 벗어나는 길은 곧 세상을 살아가는 가운데 있으니
반드시 사람과 절교하는 세상을 도피해야 할 필요는 없고,
마음을 깨닫는 공부는 곧 마음을 다하는 속에 있으니
반드시 물욕을 끊어서 마음을 싸늘한 재처럼 할 필요는 없느니라.
글자 하나 모를지라도 시적 정서를 지닌 사람은 시인의 참된 멋을 터득하고,
게송(偈頌) 한 구절 외우지 못하더라도 선의 묘미를 지닌 사람은
선교의 현묘한 이치를 깨닫는다.

사람의 정이란 꾀꼬리 소리를 들으면 기뻐하고 개구리 울음을 들으면 싫어하며,
꽃을 보면 이를 가꾸려 생각하고 잡초를 만나면 이를 제거하고자 하니,
이것은 다만 형체와 기질로써 사물을 보기 때문이다.
만약 천성의 본바탕으로 이를 본다면 그 무엇이 스스로 천기를 울림이 아니며,
스스로 자라나는 뜻을 펴는 것이 아니겠는가.
머리카락이 빠지고 이가 듬성듬성해지는 것은 헛된 육신의 시들어짐에 맡겨 두라.
새의 노래와 꽃의 웃음에서 본성의 변함 없는 진리를 배우도록 하라.
고기는 물을 얻어 헤엄치지만 물을 잊고,
새는 바람을 타고 날지만 바람이 있음을 알지 못한다.
이것을 안다면 가히 외물의 얽매임에서 벗어나 하늘의 작용을 즐길 수 있으리라
세상의 맛을 속속들이 알게 되면 비가 되든 구름이 되든
완전히 맡겨 둘 뿐 도무지 눈뜨는 것조차 귀찮아지고,
사람의 정을 다 깨닫게 되면 소라고 부르든 말이라고 부르든
부르는 대로 따르고 다만 머리를 끄덕일 뿐이니라.
천성이 맑으면 곧 배고플 때 밥 먹고 목마를 때
물 마시면서도 심신을 편하게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이 물욕에 잠겨 어지러우면 비록 선을 이야기하고
게송을 풀이하더라도 모두 정신을 희롱할 뿐이니라.

시골 노인들은 닭고기 안주에 막걸리를 이야기하면
곧 흔연히 기뻐하지만
고급요리를 물으면 알지 못하고,
무명 두루마기와 베잠방이를 이야기하면 곧 유연히 즐거워하지만
비단옷 을 물으면 이를 모른다. 그 천성이 온전하기 때문에 그 욕심이 담백한 것이니,
이야말로 인생의 첫째가는 경계니라.
산중에 살면 가슴 속이 맑고 시원하니 접촉하는 사물마다 모두 아름다운 생각이 든다.
외로운 구름과 들의 학을 보면 속세를 초월한 듯하고, 바위틈에 흐르는 샘물을 만나면 속된
것들을 씻어 주는 듯 하며, 늙은 전나무와 차가운 매화를 어루만지면 굳센 절개가 꿋꿋이
세워지고, 모랫벌 갈매기와 사슴들을 벗삼으면 마음의 동요를 문득 잊게 된다.
그러나 만약 한 번 속세로 뛰어들게 되면 외물과 접촉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이 몸은 역시 쓸데 없는 존재가 되고 말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