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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6-06 23:52
사무량심
 글쓴이 : 봉국사
조회 : 1,502  
'사무량심(四無量心)' 은 한 없는 '자(慈)' 의 마음, 한 없는 '비(悲)' 의 마음, 한 없는 '희(喜)' 의 마음, 한 없는 '사(捨)' 의 마음의 네 가지이다. 먼저 한없는 '자(慈)' 의 마음과 한 없는 '비(悲)' 의 마음의 두 가지를 이야기해 보자. '사무량심' 을 이야기할 때는 '자(慈)' 와 '비(悲)' 로 나누지만 보통은 '자비' 라는 한 단어로 쓰이며 불교를 대표하는 말이 될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는 마음이 바로 한 없는 '자(慈)' 의 마음과 한 없는 '비(悲)' 의 마음이다. <아비달마대비바사론>에서 "자(慈)에는 여락(與樂)의 행상(行相)이 있고, 비(悲)에는 발고(拔苦)의 행상이 있다" 고 정의를 내리고 있듯이, '자(慈)' 의 마음은 중생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고, '비(悲)' 의 마음은 중생의 괴로움을 없애주는 것이라는 설명이 가장 일반적이다. 이런 특성을 살려 영어권에서는 '자(慈)' 와 '비(悲)' 를 각각 '자애' 와 '연민' 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을 돕겠다는 마음을 낼 때에는 그 사람을 향한 자애와 연민의 마음이 기본일 것이다. 그 사람의 상황을 가련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러한 자애와 연민의 바탕에는 동감이 있다. 나도 겪어본 괴로움이어서 어떻게 벗어났는지를 이야기해줄 수 있고, 나에게도 닥칠 수 있는 어려움이어서 그 사람의 상황이 남의 일이 아니다. 괴로움 없애야 즐거울 수 있고 즐거움 주어야 괴로움 사라져 그래서 불보살께서 중생에게 펼치는 구제의 방편에서 가장 기본적인 일이 바로 지금 말하고 있는 자비, 즉 괴로움을 없애고 즐거움을 주는 일이다. 불보살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살필 수 있는 대지혜(大智慧)를 갖추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혜를 갖춘 불보살의 위신력은 대자대비(大慈大悲)이다. 사무량심의 한 없는 '자(慈)' 의 마음과 한 없는 '비(悲)' 의 마음은 서로가 서로의 바탕이 된다. <대승의장(大乘義章)>에서는 "자(慈)의 마음으로 즐거움을 주려고 해도 비(悲)의 마음으로 괴로움을 없애지 않으면 즐거움을 주는 일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비(悲)의 마음으로 괴로움을 없애야 즐거움을 주는 일이 비로소 성취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悲)의 마음이 자(慈)이 마음의 바탕이 된다. 비(悲)의 마음으로 괴로움을 없애주려고 해도 자(慈)의 마음으로 즐거움을 주지 않으면 괴로움은 끝내 사라지지 않는다. 자(慈)의 마음으로 즐거움을 주어야 괴로움이 비로소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慈)의 마음이 비(悲)이 마음의 바탕이 된다" 고 한다. 괴로움을 없애는 일과 즐거움을 주는 일이 서로 다른 일처럼 설명하고 있지만, 괴로움을 없애야 즐거움을 줄 수 있고, 즐거움을 주어야 괴로움이 사라진다는 말을 통해 전하려는 의미는 한 없는 '자(慈)' 의 마음과 한 없는 '비(悲)' 의 마음이 결국은 같은 마음이라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크기가 아무리 작아도 겪고 있는 사람에게는 괴로움이란 한없이 크고 힘든 법이다. 그런 괴로움을 완전히 없애주는 일, 그것이 바로 세상의 괴로움이 사라진 완전한 즐거움을 주는 일인 셈이다.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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